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삼백 오십 사 번째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는 아름다운 건물들과 흔히 떠오르는 감성적인 유럽 건축물로 이루어진 아기자기한 도시다. 몇몇 건축물을 제외하면. 인민궁전. 이 흉물을 어찌하오리까. 포크레인으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건물까지 밀어붙인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없었더라면 이 도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보다 풍성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지금은 국회궁전이라 불린다고 하는데 워낙에 크기만 장대한지라 여전히 빈방이 있다고 전해진다.

차우셰스쿠는 선배이자 루마니아 공산당의 서기장이었던 게오르기우데지의 충실한 수족이 되어 그가 하라는 대로, 그가 명령한 대로 이행하며 그의 환심을 샀다. 방사능을 쏴서 자신을 암살할 수 있을 거란 망상에 빠진 전임자인 게오르기우데지가 폐인처럼 생활하고 있을 때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차우셰스쿠는 어느새 공산당 내부에서 넘버 2까지 오르게 되었다.
당시 광풍이던 공산주의와 스탈린을 추종하며 자기 땅인 루마니아에서 나고 자라면서 공산국가에서 선호할 만한 사상이 투철한 동무이자 전위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공부와 성찰에 거리가 먼 그는 행동이 먼저 앞섰고 후술 한 기행도 이를 바탕으로 시너지가 났다. 여하튼 65년에 게오르기우데지가 사망하고 그는 초대 루마니아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초창기에는 모두가 그렇듯 열정적인 그의 모습에 루마니아 국민들은 그를 지지하고 있었고 기대가 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루마니아 그리고 전 세계에서 손꼽힐만한 막장의 길이 시작되었다. 일단 공산국가의 연대가 중요했던 냉전시절 북한을 방문한 차우셰스쿠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김일성이 보여주는 북한의 모습은 철저히 지도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며 모든 것이 김일성을 칭송하는 환경이 그때 당시에 한참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시에 셔터 걸어 잠그고 외채를 갚겠다고 중공업 수출에만 올인을 하는데 쓸데없이 하라는 수입은 안 하고 다른 것을 수입해 왔다. 김일성의 우상화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삘받은 차우셰스쿠는 그대로 직수입해서 자기를 우상화하는데 힘썼다.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를 집안에 걸어놓듯이 자신과 자신의 아내의 초상화를 집집마다 걸어놓게 했고 북한이 쓸데없이 고퀼리티로 자랑하는 퍼레이드도 자신을 찬양하는데 모방했다.

충격적인 건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에 불과했던 루마니아 가구에 3백만 개에 달하는 도청장치를 마련하여 서로를 감시하게 했다는 점이며 루마니아 인구정책에도 손을 댔는데 이는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차우셰스쿠의 기행 중 하나로 한 가구당 자녀는 최소 4명은 낳아야 했으며 낙태와 피임을 금지하는 아무리 보수적인 관점.. 음 심지어 극단적인 신정국가에서도 하지 않을 콘돔을 규제하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였다.
당연히도 자라나는 아이들의 일부는 고아가 되거나 제대로 된 교육과 복지는 물 건너 간 셈이었고 자신의 친위대인 보안대(세쿠리타테)로 지원하게 유도하여 유일한 출세길을 열어놓게 하였다. 문제는 임오군란처럼 정규군은 천대하고 세쿠리타테에게만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군부를 조종하다 보니 후에 있을 혁명이 결국 정규군의 총부리가 그에게 들이밀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차우셰스쿠에 반대적인 입장을 내놓았던 라슬로 목사의 추방명령이 기폭제가 되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게 되면서 그는 관제 집회로 민심을 붙잡으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실시간으로 차우셰스쿠가 연설하다가 반응이 좋지 않자 당황하는 모습을 위의 사진으로 볼 수가 있다. 급히 헬기를 타고 도망가려 했던 그를 조종사가 "헬기 상태가 안 좋다"며 둘러 대며 착륙하고 시간을 끌며 혁명군이 그를 붙잡게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차우셰스쿠 최후는 충격이다. 그와 그보다 더했던 엘레나 차우셰스쿠에게 즉결심판을 자원하고자 했던 인력풀 상황에서 그대로 총살을 당한다. 이탈리아 작가였던 단테가 묘사하는 지옥에서 아마도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았을 여러 독재자들 중에 한 명인 차우셰스쿠는 기행과 무식 그리고 의심과 망상을 오고가며 약 24년간의 루마니아를 파탄 내었다.
오늘 연재는 최근 "염소의 축제"라는 소설을 완독 해서 그 주인공이었던(?) 도미니카 공화국의 "라파엘 트루히요"를 써보려다가 머릿속 존재감을 차지하던 차우셰스쿠가 당당히 악인 열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클리셰 부수기 (0) | 2024.08.08 |
---|---|
연애결혼출산 담론 (1) | 2024.08.07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0) | 2024.08.05 |
찌뿌둥해 (0) | 2024.08.04 |
토요일 밤하늘의 별 (0) | 2024.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