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클리셰 부수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삼백 오십 육 번째

 

 

 

요즘은 시장이 다양해지면서 나오는 문화적 소산들도 덩달아 다양해지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에서 책, 영상물, 그림, 음악, 공연 등등 각자의 영역에서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맛있는 게 다양해진 시대에서 어떤 것을 즐길지 택하는 즐거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스타워즈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왕좌의 게임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아니메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런데 가끔 나도 그렇지만 다른 이들도 암묵적으로 느끼거나 혹은 가볍게 나누는 스몰토크에서도 "아 요즘 볼 게 없네"라고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하루가 다르게 엄청난 양의 창의적인 작품들이 나오고 있지만 소비자에게 알려지지 못해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면도 있을 테고, 레퍼토리가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이 들고 비슷한 작품들이 양산되기 때문에 질리는 감도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이 대박을 치면 일단 어디선가는 제목만 다르지 거의 복붙 수준의 작품이나 어설프게 저예산으로 나오는 영화들도 있고 원조가 대박에 힘입어, 얼마 지난 후엔 제목 뒤에 2를 붙여 나와 흥행의 연속가도를 달리고자 한다. 하지만 1편만 한 2편 없다고 2편은 다소 재미가 떨어진다거나 진부하고 오히려 참신함을 주었던 장치들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어 흥행이 저조한 경우도 많다.

 

할리우드에서 통념적으로 인식되어 오고 있는 흥행 공식이랄까? 예를 들어 "영상 시작 5분 안에 가장 임팩트 있는 장면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등등이 세간에 알려져 있었다. 압도적인 자본 속에 화려한 영상미와 더불어 직관적인 스토리를 자랑하던 미국적 영화관은 계속 도전받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관객들이 뻔한 이야기 말고도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점도 있고 다른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들의 세계관을 그리는 작품들이 계속 생겨 나고 있다.

 

그래서 클리셰 부수기. "틀에 박힌 서사"를 부수기 위한 작품들이 언제나 등장해 왔고 요즘에는 더욱 더 많이 나오고 있다. 클리셰 부수기 자체가 어쩌면 작품이란 창의적 결과물이어야 하지만 어느새 상업적으로 매몰되다 보니 할리우드 공식처럼 마련된 대중이 호응할 만한 부분만 계속 넣다 보니 천편일률적인 콘텐츠만 나오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창의"를 다시 살려내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파격적인 시도라던가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발상등 작품에서 드러나는 여러 연출 혹은 설정들이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와 말 그대로 기존의 예술적 헤게모니를 새로운 헤게모니로 재창조하는 또 다른 "창의"를 만든 다는 것도 의미가 깊다. 하지만 클리셰 부수기도 어느새 남발하다 보면 클리셰 부수기 자체도 어느새 클리셰가 돼버리는 현상이랄까? 그런 점이 느껴졌다.

 

사회적 메시지를 반영한다 해서 상대적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넣다 보면 혹은 그것을 강조하다 보면 "교조성"이 생긴다는 점이 안타깝다. 흔히 말하는 PC적 관점에서 요 근래 디즈니에서 나오는 작품들이나 블랙워싱 논쟁등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를 배려한다 해서 작품이 설정해 놓았던 판 그 자체를 깨버려 고유의 정체성을 상실해 버리는 경우를 보면서 그런 관점 혹은 설정에 대해 이해는 가지만 작품만이 가지고 있던 색깔을 바꾸어버리면 어느새 주객전도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일례로 나는 007 팬이지만 다니엘 크레이그가 마지막 작품을 촬영할 당시 차기 제임스본드는 누구일지 다들 기대하고 있었는데 흑인 여성 제임스 본드가 거론되자 말들이 많았었다. 문제는 원저자 이언 플레밍이 만들어 놓은 007 제임스본드 작품과 캐릭터는 키 큰 백인남성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데 이것 자체를 부수어버린다면 이는 007 작품이 아니라 타이틀만 따왔지 아예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버리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회적 이슈나 메시지를 넣은답시고 작품 자체의 색깔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과연 타당하냐는 것이다. 작품의 설정에는 그 어떤 차별 혹은 혐오 그리고 숨겨진 메시지가 없음에도 그것을 마치 메시지와 혼동하여 그것조차 바꿔버리려는 시도를 보는데 그건 좀 아닌 듯싶다. 그리고 메시지도 너무 많이 혹은 의미를 많이 부여하게 되면 재미를 찾아 방문한 손님들이 "내가 보던 그 영화가 아닌데"라는 말을 듣기 뻔하며 적절히 가미되어야 하며 스며들듯 반영해야 더욱더 먹히지, 들입다 "우리의 교훈은 이렇다!"라는 식으로 넣게 되면 과연 누가 좋아할까? 바른 말도 마치 너무 들으면 잔소리처럼 들리듯이 말이다.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막만 있는 게 아니에요  (0) 2024.08.10
천년제국 비잔틴  (0) 2024.08.09
연애결혼출산 담론  (0) 2024.08.07
악인 스토리 : 차우셰스쿠  (0) 2024.08.06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0) 2024.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