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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삼백 오십 삼 번째

 

 

 

며칠 전에 고집에 대해 논해 보았다. 고집은 삶에서 필요함을 주장했는데 "초심을 잃지 말자"라는 주장과 문득 결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처음 가졌던 마음, 초심. 흔히 방송에서 연예인이 잘 나가게 되면 혹은 누군가 명사가 되고나서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대중이 가졌던 호감은 빠르게 식기도 한다. 그리고 그에게 "초심을 잃어버렸다" 비판하기도 한다. 

 

 

 

초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겸손함이 있을 것이며 감사함이 있을 것이고, 또 성실함 등등 그가 가진 어떤 마음가짐과 실천은 적어도 보이는 이미지에서 호감을 줄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항상 초심이 좋은 것일까? 어느 위치에 올라가게 되면 그동안 가졌던 마음가짐도 달라진 사람을 보게 되는 경우 평가도 달라진다. 한 가지 앞서 인간은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안다면 초심에 대한 미묘한 결도 느껴질 것이다.

 

일례로 현 지구에 수많은 나라들. 그리고 여러 독재국가들이 즐비 해 있는데 어떤 독재자가 나라를 다스리기 이전에 그 나라는 대체적으로 식민지이거나 혼란기를 겪는 경우가 많았다. 아프리카 국가들만 보더라도 수두룩 빽빽한 독재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쿠데타로 집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혀 그래보이지 않지만 지금과 달리 초창기에는 유능한 독립투사였다. 뛰어난 군사 지도자로서 외세를 물리쳐 마침내 독립을 이루어냈던 것이다.

 

거기까지는 좋다. 거기까지만. 그 이후의 행보는 악을 더 큰 악으로 물리친 셈이 돼버린 상황이 펼쳐진다. 군인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자량 했던 그들이지만 권좌에 앉아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도 마치 싸울 때, 전장에서의 요구하는 능력과 같은 줄 알거나 혹은 일부러 그러는 경우가 생긴다. 모든 것이 상명하복이고 자기의 명령만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며 결국 독립과 왕관이라는 도취에 빠져 자기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야전에서는 일사불란하게 모두가 마치 한 생명체처럼 움직여 전술 전략에서 적을 상대로 이기는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극대화된 효율성과 전쟁과 전투의 당연한 특성상 인명손실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 마인드가 독립 후 지도자가 된 그들에게 계속 유지가 된다면 나라 사정도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누군가는 애초에 이걸 초심이라 여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나는 애국자이며 이렇게 해오던 것이 맞았으니 계속해야 돼!"라고 우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케바케가 필요하다. 결국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며 변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요구받는 그 무언가를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고집이라고 불렀던 초심은 가치나 주관으로써, 결과론적인 논리를 제외하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밸런싱을 맞추어야 하는데, 이걸 모든 상황에 적용하겠다고 하는 경우는 일상에서 접하는 어떤 이의 이미지에서 독재자의 뒷 이야기까지 모든 인간은 이 문제를 피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변심이라 하면 "사랑이 어떻게 편하니 엉엉"이라는 느낌(?)이 있겠으나 결국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지라 누군가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집단속에서 살아가기에 상대방과 환경을 고려한 판단이나 인식이 요구받는다. 어느 순간 초심이 발목을 잡게 된다면 과감히 열린 방식으로 다른 마음을 가지는 것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볼 수 있다. 그 위치가 누군가 단 한 명에게만 보인다거나 아니면 나라 구성원 전체에게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갖추어야 할 유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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