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삼백 오십 이 번째
기지개를 켠다. 찌뿌둥하다. 일상에서 쓰는 단어를 갑자기 글로 써보니 독특하게 다가왔다. "찌뿌둥해"라고 하니까 뭔가 중국어 같은 생각이 들었고 동남아시아 단어 같은 느낌도 들었다. 가끔 친숙한 단어를 다시 떠올려 보면 뭔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한글을 접하는 외국인의 마음을 잠시 체험해본다랄까? 우리는 익숙하지만 다른 이는 전혀 익숙치 않은 순간들이 많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찌뿌둥할 때가 많다. 더워서 어딜 못 나가 집에만 있다 보니 몸이 좀 쑤시는데 매번 기지개의 연속이다. 에어컨을 틀 때 우리 집 고양이조차도 이번 여름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애초에 출신이 더운 곳이니 만큼 더위에 강하다고 자부할 테지만 고양이도 고개를 절레절레할 만한 더위다. 또 막상 이런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면서 외국인은 친숙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순간이 겹겹이 쌓이면 어떻게 될까? 더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의 패턴으로 굳어지는 것은 당연할 테고 어느새 그게 자연스러워진다는 점이다. "한 두 번 겪는 일이냐?" 피를 아무렇지 않게 닦는 액션영화 주인공처럼 경악할만한 혹은 놀라울 만한 일은 누군가에게는 매일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익숙하지 않게 여겨지는 그 순간들.
의식하지 못했던 나날들이 현재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나비효과는 작동했다. "억지"라는 단어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예전에 억지로 한다. 억지스럽다는 것에 불편감을 느꼈고 불만을 토로했는데 어느새 모든 것이 억지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을 처음 시작하다 보니 억지스러울 수 있다. 일상과 대비되는 무언가를 해본다는 것은 많은 불편함을 초래한다.
모든 시작은 억지일 수 있다. 다만 어느새 하다 보니 자연스러워진 것이며 둔감화 된 것을 비추어 볼 때 이런 배움의 단서에서 성장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는 감정적 요동 앞에 항상 기분 좋은 날이 될 수 없음을 또 항상 기분 좋게 무언가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분이 좋으면 하기 쉽지만 안 좋으면 억지로 한다는 느낌이 워낙 강하게 다가온다.
다시 정리해 보면 어떤 조건, 어떤 환경, 어떤 기분이 갖추어진 다음에야 시작한다는 것은 다르게 보면 굉장히 불안정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야 편안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감정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결국엔 하는 날이 있고 안 하는 날이 있듯이 왔다 갔다 한다. 병원의 바이탈 사인처럼 직선으로 유지되면 끝이지만 살아있는 한 계속 요동치고 있다. 병원 갈 정도로 불안정한 건 아니지만 여하튼 억지로 한다는 것은 오히려 안정화시킨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예전 어떤 영화에서 죽기 일보 직전 혹독한 추위 앞에서 주인공은 스스로 "움직여야 해" 되뇌였던 장면이 떠올랐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의식도 잃고 얼어 죽는 길만 남아 있을 테니까 움직여야 하는 것이 맞다. 또 감정의 차원에서도 정말 드릅게(?) 움직이고 싶지 않고 그냥 온몸을 눈밭에 맡긴 채 피로감에 잠을 청하고 싶지만 억지로 뜬 눈을 유지하며 움직였던 것은 이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다.
극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우리 일상의 수위는 굉장히 낮을지라도 여전히 작동함을 볼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억지는 무엇인가? 억지로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억지로 느껴져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무엇인가? 하도 안 하다가 하니 억지스러운 것. 처음 해보는 그것이 비록 지금은 낯선 것일 수 있지만 어느새 익숙해져 나도 모르게 둔감한 채 잊어버리고 있을 것이다. 마치 지금처럼.
찌뿌둥하다. 그러나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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