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육백 이십 번째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창공을 넘어 저 멀리 우주에는 너무나도 많은 수수께끼가 숨겨져있음을 알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빛의 속도로 계속 공간을 확장시키는 우주와 공간 너머로 확장되지 않은 곳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을 주고 있다. 우주에서 우리를 보면 작디작은 알갱이의 지구가 보이고 은하계에서 보면 지구는 티끌에 불과하다. 하지만 막상 쑤욱하고 줌인하면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주변이 전부인양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행성 간 비교를 하는 영상에서 지구가 쌀 크기도 안 되는 것을 보며 우주의 엄청남을 간접적으로 느낀다. 그래서 작디작은 지구에서 온갖 고뇌와 분쟁과 갈등, 어려움은 우주적 시각에서는 우리가 현미경으로 세포를 바라보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니다란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한마디로 별 것도 아닌 것을 우리는 끙끙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아등바등 살아봤자 어쩌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단 이야기.
우주의 걷잡을 수 없는 방대함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다. 우주의 먼지 중 하나인 소행성이 떨어져 한 때 지구 생태계가 완전히 리셋이 되었고 한번 떨어지면 지구 종말을 외치는 수준이였기에 경외심과 공포심 모두 존재한다. 너무 호기심을 가진 채 접근하는 사람들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좌절과 불확실성만이 마음으로 남아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야만 자신의 관점에서 우주를 적당히 바라볼 수 있었다.

한 번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주적 공포에 대한 내 뇌피셜은 이랬다. "재벌 책상에 곧 떨어질랑 말랑하는 볼펜을 걱정하는 사람의 마음과도 같다"라며 말했다. 즉 내가 거기서 일하는 비서도 아니고 재벌은 더더욱 아닌데, 통제 불가능한 요소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풀었다. 설령 신경을 쓰면서 걱정도 하고 싶어도 애초에 통제 불가능한 우주를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봤자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티끌도 안된다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 작디작은 지구에서 몇 십억명이 달하는 인간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몇십 억 명 중에서도 한 명에 속하는 개인은 그 몇십억 명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 아마도 여러 생각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때 육안으로 파란 하늘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적당한 호기심을 가진 채 파란 하늘과 날아다니는 잠자리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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