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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일기 벽돌시리즈

교집합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백 십 일 번째

 

 

 

 

그저께만 해도 반팔 입어야 해도 될 정도의 날씨여서 "아직도 덥네" 하고 한 주를 보내고 있었다. 비가 오고나니 어제부터인가 서서히 날씨가 기지개라도 피는 모양인지 점차 추워지고, 긴팔을 본격적으로 입을 때가 되었다. 가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 상황과 비교하는 경우가 있다. 마치 지난 여름과 올해 여름을 비교하듯이. 과거의 나와도 비교하지만 타인이 처한 입장과의 비교가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다.

 

 

 

비교를 통해 시기심을 느끼거나 질투를 느끼기도 하지만, 반대로 겸손함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마음 현장은 하루에 수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에서 생각이라는 녀석이 그물로 만선을 노리듯이 여러 미끼를 던지며 우리의 의식을 흐리게 만든다. 이번에는 이런 비교, 잠시후는 저런 비교 "이건 어때?" 등등 나와의 대화에서 알게 모르게 계속 의식하게 되고 어느새 시장에서 딜을 하고 있다.

 

줏대가 없다기보다는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어느새 그 기준이 생긴 것이고 그 기준에 맞게 스스로를 맞추고 타인도 맞추게 보려는 경향이 대다수다. 그러다가 비교라는 영역에서 나와 상대의 차이 그리고 다름에서 비롯되는 여러 감정들이 주눅들게 하거나 자만하거나 등등의 결과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볼때 비교도 양면적이다. 공개적으로 비교당하거나 비교받는 것을 싫어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끊임 없이 이런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기준을 누가 제시하고 있는지 그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 있는가? 앞서 서술했지만 상호작용으로 합의점을 찾은 듯한 기준은 말 그대로 타인과의 영역과 내 영역이 교집합 되는 부분에서 눈치 또는 배려를 하고 비교를 하게 되는 경향을 보인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며 나의 줏대로만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유아적일수 있다. 기준을 잡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애매모호함의 끝판왕이기 때문에 대다수는 외부로부터 수용하기가 쉽다.

 

 

 

이런 스탠다드를 그나마 구체적으로 잡은 것이 꿈일지도 모른다. 자기만의 꿈, 가치의 실현은 어디까지나 본인이 추구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 기준을 충족하면 만족스럽고 그 기준을 미달하면 불만족하게 된다. 그러나 꿈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외부적으로 과다 노출이 되면 자의식 과잉이자 독불장군이라고 판단될 여지도 있기 때문에 상당한 균형을 요구한다. 

 

하지만 모든 과정과 결과에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그리고 나만의 기준이 반드시 나의 행복으로 직결되지도 않는다. 교집합안에서 내가 세상과 조화롭게 살아가며 모두 윈윈하는 것을 추구하는 선한 사람들이 있다. 꿈이 이기적이게 되면 그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 앞에 모든 것이 무릎을 꿇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기준이 너무 외부적이거나 너무 내부적이면 끊임없는 비교와 부조화를 낳게 되며 결국에는 스스로에게 멍에를 씌우게 된다. 삶에서 자각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내가 비교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우면서도 꿈의 폭주를 얼마나 절제하고 있느냐를 짚어보는 것에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기준치를 너무 높게 잡으면 항상 실망하기 마련이고 기준치를 너무 낮게 잡으면 외부에서 어느정도 바라는 기준과의 충돌을 피할수가 없다.

 

환절기라 주변 지인들이 감기에 걸렸는데 날씨가 날씨인 만큼 건강을 살피듯이 이런 보이지 않는 현장점검이 내게도 주기적으로 필요로 한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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