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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악인 스토리 : 프랑코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백 십 번째

 

 

스페인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려면 프랑코라는 인물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스페인에 대한 파편적인 인식은 대항해시대와 무적함대 그리고 영국과의 전쟁에서 헤게모니를 빼앗기고 2차대전 추축국으로 참전하다 유야무야 한 페이지로만 장식하게 된 나라로 생각하고는 한다. 앵글로 색슨 계열의 영미 중심의 패권을 제외한다면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전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끼치던 국가는 단연 스페인이다.  

 

 

 

당장 전세계 언어별 사용 인구수가 압도적인 중국을 제외하면 2등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스페인어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스페인 전반에 관해 살펴보게 되면 이 인물이 개발독재자이며 자국민을 무참히 학살한 상처를 남겼기 때문에 라틴의 맹주 스페인을 나락으로 만들었다 볼수 있지만 사실 내부적으로는 평가가 복합적이다. 역사 그리고 인물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맥락과 상황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결과도 그 항목 속에 포함되어 있다.

 

1936년부터 1975년까지 약 39년간의 철권통치를 했던 프랑코는 군 경력으로 스페인이 식민지로 지키고자 했던 북아프리카 모로코와의 전쟁에서 큰 활약을 하며 군부에서 입지를 다지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 내전이 터지고 만다. 이념적 파벌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어느 하나의 이데올로기만을 줄 곧 내세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대표적으로 민주정을 기치로 한 공화파와 전통왕정의 국민파가 스페인독감과 대공황으로 박살이 나 있던 스페인 안에서 끝도 없는 혼란기의 진통의 순간을 맞닥뜨린 것이다.

 

의외로 잘 나가는 군인이였던 것만큼 무능한 독재자처럼 보일지 모르나 내전의 승자는 프랑코와 국민파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서로 지리멸렬한 싸움을 줄곧 해왔지만 민주정을 지지하는 공화파에서 이렇다할 인물을 중심으로 뭉치지 않았기 때문에 코앞이 전쟁터인데 어느정도 차악으로 필요한 상명하복 구조와 위계질서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이 그들의 패배 원인이였던 셈이고 반대로 국민파도 여러 이념적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코의 정치력과 작금의 운명공동체 정신이 그들을 군대식으로 움직이게 만든 점도 있었다.

 

 

후안 카를로스 1세와 프랑코

 

스페인 내전을 끝낸 프랑코는 절대군주에 필적할만한 카우디요(지도자)의 자리로 올랐다. 단일 국가체제에 혈안이 되었던 프랑코는 내전 당시 그리고 그 이후에까지 철저한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지역 분리주의자와 민주주의 이념을 내세웠던 남은 공화파를 철저히 숙청에 숙청을 거듭했다. 내전기에는 20만명 가까이 처형되었고 내전이후 5~10만명 규모의 사람들이 스페인의 곳곳에서 죽임을 당했다. 피바람을 겪게된 스페인 국민들 중 누군가는 체제에 불만을 품었다는 이유로 어느새 공화파라는 낙인이 찍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마치 역사 속 이념전의 축소판을 스페인에서 겪고 있는 듯 했다. 정경사문 모든 것이 혼란하고 복잡하게 돌아갔다. 앞서 경제적으로 대공황의 여파가 닥쳐오고 사회적으로는 독감까지 퍼지는 바람에 내전이란 혼란을 야기했는데 그의 기반이었던 팔랑헤(군단, 단결을 의미한다)당은 프랑코가 힘으로 국민파 내의 이념적 파벌을 정리하고 유일한 독재체제, 프랑코를 중심으로 뭉치게 강제적으로 엮어버린다. 그래서 이들을 정의하기로는 어떻게보면 권총 들이밀고(야.. 웃어) 하나의 이익단체로 만들어 나온 정당으로 인식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전이 끝나 수습은 해야겠고, 전쟁지원을 해주던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연대는 하지만 중요한 건 프랑코는 기둥뽑힌 집안부터 다시 재건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독재체제를 굳혀가고 있었다. 이어지는 2차대전에서 스페인은 소극적으로 움직인다. 이것이 로또가 되었는지 추축국의 전쟁 책임과 실패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고 양다리 외교를 펼쳐가며 그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며 민주적 가치로 압박하는 서유럽과 미국의 요구를 견뎌낼수 있게 된다.

 

냉전때도 이리 흥 저리 흥이였던 프랑코가 철저한 반공주의를 내세웠기 때문에 체제가 살아남게 되었고 내부적으로 분리주의를 외치던 도시 지역은 철저히 탄압하고 충성파의 지역들은 개발시켜주는 정경유착으로 개발독재를 미화하게 된다. 프랑코의 의지였는지는 모르지만 자기는 섭정으로서의 역할로 왕당파를 진정시켰던 것 만큼 그의 사후 스페인의 민주정을 이끌게된 바지 사장 후안 카를로스를, 2인자였던 블랑코가 암살당하는 바람에 직간접적으로 리더로써 키우게 되었다는 점도 복합적인 평가로 작동하고 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학살자이며 파시스트 독재자로 평가하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근현대 스페인의 혼란을 반영한 하나의 상징, 구체화한 입체적인 인물로 느껴졌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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