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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일기 벽돌시리즈

해소와 원석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삼십 칠 번째

 

 

 

 

작품명 : 멍 때리다 그린 그림

 

어릴 때 미술학원을 다녔다.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부였는데 이렇다 할 지역사회 입상은 해보진 않았다. 다만 만화를 그리거나 컨셉 그림을 생각나는 대로 그리며 스트레스나 암울한 감정을 풀기도 했다. 초등학생 저학년 시절 미술학원에서 각자 자기만의 일상을 그리라는 선생님의 제안에 여타 다른 아이들이 색연필과 물감 그리고 크레파스로 야무지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나도 평범한 나의 일상을 그려냈다.

 

 

 

 

선생님이 한 명씩 불러서 검사를 하는데 내 차례가 되자 당당하게 그림을 냈다. 그런데 그림을 받은 선생님의 표정이 안절부절하다 못해 웃음을 터뜨리셨다. 자세는 어쩔 줄 몰라하셨던 것 같다. 이유인즉슨 내 그림은 "아빠와 같이 목욕탕 간 날"을 타이틀로 남성 목욕탕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려냈던 것이다. 시대를 앞지른 아방가르드적 예술작품에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선생님은 여전히 예전 사고방식에 갇혀있었다(물론 농담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피드백을 주시려고 손가락으로 그림 한 부분을 짚으려고 하시기엔 참으로 난감하셨을 것이다. 그림속 모든 사람이 대부분 에덴동산과 같이 자연인이었고 도화지 속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목욕탕 그 자체를 가리키기엔 메인 이슈가 아니라서 결국 사람을 가리키셨다.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전위예술가로서 파격적인 발언과 함께 신체부위에 대해서 설명했다. "요건 이걸 그렸고 그건 요걸 그렸고요"

 

웃음을 참으신 채 "아 그렇구나"라며 어물쩡 넘어가셨던 게 기억이 난다. 또 뭐라고 해주셨던 것 같은데 짐작건대 너무 노골적(?)으로 그릴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때 당시를 기억하며 순수한 건지 뻔뻔한 건지 모를 정도로 창의성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또 포스터나 풍경화보다는 쉬는 시간 그리고 수업시간 도중에 몰래 연습장에다 만화를 그리고 몇 없는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그들의 박장대소를 기대하면서 매번 그려냈던 것 같다.

 

 

 

 

아무튼 나의 미술사는 그렇고 주변에서 만화가를 하지 그러냐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확신이 없었고 취미로만 삼고 싶었다. 가장 위의 나의 그림도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리 잘 그린 그림이 아닌 아마추어적인 티가 난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그렇고 중요한 건 그림이 아니라 내 창의성이었다. 스스로의 장점에 대해 각자 분명히 하나이상은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창의성이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그림을 매개로 했던 창의성 발현을 어디서 해낼지가 참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계속 나의 맘속을 탐험할 수밖에 없었고 진로고민까지 겹쳐서 근 몇 년간 미간이 찌푸려진 채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발현할지 알게 되었고 또 어떻게 나의 행복을 위해 살아갈지 보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만족한다. 각자의 강점은 단순히 커리어적인 부분에서 협소하게 적용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아니다.

 

강점은 원석과도 같아서 그걸 깎아내서 아름답게 만드는 건 각자의 몫이지만 그 원석이 보석이 되어 어디든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목걸이에 펜던트라던지, 반지에 부착한다던지, 브로치를 만들던지 보석은 어디에 사용하든 귀중하고 아름답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원석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걸 다듬어 나간다면 그 자체로도 만족할만한 삶이며 부가적으로도 여러 기회가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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