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성에 젖은 사람이 타성에 반대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드는 일이다.설령 그게 유익하고 올바른 길이라 머리로 생각하려 해도 쉽지 않다. 평생 오른손으로 손 글씨를 썼던 사람이 왼손으로 손 글씨를 쓰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젯 밤 모임을 가질 때, 나의 발제로 일상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을 나눠보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하여 안일함과 엄격함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음이 문득 떠올랐다.
여러분들 스스로 자기 자신의 내면과는 사이가 원만하신가? 문득 궁금하다. 무슨 소리냐면현재의 나에게 불만을 가진 나의 이성 혹은 생각과 내면에 존재하는 기존의 나와 부딪히는 것.어떻게 보면 변화를 원하지만 내면에 있는 나는 막상 그때가 되면 저항의 목소리를 외치기 때문에 매번 도로아미타불 혹은 무산되는 듯했다. 지금도 그렇다. 기존의 나와 불만을 가진 나의 관계가 그리 좋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의지박약이라고 외치든지, 노력의 부족이라고 외치든 혹은 경멸의 대상이라 여기든 뭐라하든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외친다한들 기존의 나는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비유적인 표현으로 자아를 두개로 나누어 보았는 데,한 마음에 양가적인 감정들로 인해 변화에 대한 힘이 약해지고 무력감을 느끼는 상태라 보면 쉬울 것이다.운동을 결심한 마음과 운동을 나가기 싫어하는 마음이 상충되고 언제나 가기 싫어하는 상태로 회귀하는 사례를 생각하면 와닿을것이다.
이를 풀어가는 방법은 이미 세간에 다 알려져 있으니 굳이 언급은 하지 않겠다. 다만 요즘에는 자존감을 챙기거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는 측면이 부각 되면서 노력하는 나 자신을 "너무 애를 쓰려 한다"로 오해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조금이라도 나는 것을 못 견뎌하거나 혹은노력 자체를 SNS나 극단적 비관주의자들이 외치는 "노오력"에 대한 비판과 결부되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려는 경향이 분명 있다.
저항하는 마음에 대해서 충분히 내가 그간 그렇게 살아왔음에 대해서 인정하고 나만의 방법으로 접근 할 수는 있겠으나, 저항하는 마음만을 인정하고 원래 나는 그렇다거나, 또 나중에 시간이 있다는 식으로 둘러대면서불만을 해소하지 못하면 그것대로 문제일 것이다.이런 심리적 갈등은 당연한 것이지만 매번 우리는 다시 소파로 돌아가고 있다. 이런 갈등 자체가 노력이고 변화는 노력하는 도중에 생기기 마련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