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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자기(삶) 소개서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삼백 구십 칠 번째

 

 

"수요일은 추석인데 모임 합니까?"

"음 일요일은 다들 오고 가실 텐데 하지 않고, 수요일엔 집에 다 계실 거 같으니 하겠습니다"

그렇다. 오늘도 모임을 끝내고 왔다. 아니 뭔 놈의 비가 이렇게도 쏟아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후만 하더라도 더워 죽기 일보직전이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적절하게(?) 비가 쏟아졌다.

 

 

 

여하튼 멤버들의 추석 근황을 들으며 야무지게 진행하고 집에 도착 후 글을 써서 올린다. 반복된 일상과 함께 모임을 나가고 다시 귀가하고를 떠올리면서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라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메시지를 우린 이미 많이 접해봤다."지금의 나는 과거에 내가 선택 혹은 행동함으로써 나타난 결과"라고. 좋든 싫든 현재의 상태는 예전 본인의 결과물이다.

 

있는 그대로 직시해 보자. 어떤 위치에 있던지 혹은 어디에 있던지, 그곳에 가기까지 당신의 개입 없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쁜 결과라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개입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이 냉정한 메시지를 다시 뒤집어 보면 좋은 결과도 당신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임이 틀림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운명론적인 사고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연의 법칙처럼 흘러가는 강물을 다시 붙잡고 올릴 수는 없으나, 흘러가는 와중에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붙잡을 수 있다. 운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자신의 삶 그리고 일상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면 적어도 마음은 편해진다. 어떤 사고든 간에 건강한 사고는 한쪽에 위치해 있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봐야 건강해진다.

 

 

 

나의 생각은 달리 보면 자유만능과 노오력을 좋아하는 분들이 분명 좋아할 멘트이기는 하지만 그 역시 완벽하지 않다. 사상의 스펙트럼은 때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해 보자면) 노력을 중요시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노력이라는 개념이 어디까지 설명가능하고 효과적인지는 각자마다 다르다. 똑같이 운명이라는 여러 외부변수의 종합세트를 완전히 외면하는 것도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돌아와서 적어도 내 영역에서 나의 결과물은 나의 과거행동으로 비롯되었다. 생각해 보자. 자기소개서에 경력이나 이력 칸이 당연하게도 존재하는 이유는 스펙의 통념을 넘어서 이 사람이 지원하는 분야에 헌신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함께 과거에 어떤 행동을 하였는지 알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만약 운명이라는 면접관 앞에 자기 삶 소개서를 제출한다면 뭐라 적겠는가?

 

비교가 불가능한 각자만의 다양한 색깔을 풍기는 이력들이 여럿 존재할 것이다. 책임은 양면적인 개념이다. 책임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무거움과 개인에게 요구하는 별로 내키지 않는 태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행복을 느끼게 된 이유는 당신의 책임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가기를 결단하고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하고 격려하는 결과로써 당신은 그런 행복을 느끼는데 충분한 책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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