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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에세이] 운명?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육백 십 오 번째

 

 

 

나는 개인적으로 운명은 있지 않는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이미 결정지어졌고 결정지어진 노선대로 따라 살아가는 게 운명이라면, 결과가 종속되어 수동적인 삶으로 여기는 것뿐만 아니라 과정 자체도 내가 어찌할 수 없다면 얼마나 무력한 삶일 까? 반론으로 그런 것을 알면서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것도 운명이며 운명을 믿지 않는 것도 운명이라 말한다면, 끝없는 논리의 소모전만 계속될 것이다.

 

 

 

아무튼 과정과 결과가 미리 정해져 있는 삶을 운명으로 한정한다면 그것만큼 답답하고 재미없는 삶은 없을 것이다. 편할 수는 있겠지만 운명을 아는 것도 아닌 데 자꾸 사람들은 운명을 이야기한다. 인간에게 자유의지, 자신의 의도대로 삶을 꾸려나갈 능력이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조금 더 세련된 운명론적 관점은 주변의 환경과 외부요소들이 그 사람의 의도대로 살아가게끔 세팅하는 게 아닌 그것들을 좌지우지한 상태 안에서 제한된 선택만 가능하게끔 한다 말한다.

 

최근에는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이 운명론 비슷한 유전자의 영향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이 있어, 자유 의지대로 삶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철없는 낭만쟁이들의 논리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주관이다. 환경이 그렇게 되어 있음에도 자기가 손수 삶을 만들어나간다 착각하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실현한 사례는 이미 널리고 널려있다. 환경과 유전자가 원인을 제공해 준다 해도 이 부분은 물길의 통로지, 물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흐르는 속도와 점도 등 중간에 끼여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물길이 세면 물이 넘칠수도 있다.

 

 

 

사주팔자, 점 보는 것이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유행하고, 좀 더 캐주얼하게 타로카페를 열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복채를 계속 주며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들을 때까지 다른 점집을 찾아가는 것은 운명일까? 아니면 단순 회피일까? 불길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운명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내가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답답함이다. 그래서 최대한 좋은 운명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 받고 싶어한다.

 

설령 운명이 정해졌다 한들, 그것을 빌미로 자포자기를 한다거나 자신이 좌절과 고통을 견뎌야 할 부분에 대해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운명에 대한 착각이다. 다른 의미로 결정된 운명이 있다 여기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운명이다", "내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평생을 바치는 것이 운명이다"라며 받아들이기도 한다. 결국 자유의지나 운명을 논하면서 나의 생각은 운명이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스스로 뭐라고 규정짓는지에 따라서 또 달라지는 것 같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