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 오십 번째

"어차피 내려갈 거 왜 올라가는 거야?" 등산 가기 싫어하는 누군가의 주장이다. "야 그럼 다시 올라갈 거 왜 집에 있는 거냐?" 끝도 없는 무한루프,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같은 논리의 흐름이다. 예전에 그냥저냥 부모님 따라서 등산을 하곤 했는데 산 중턱에 올라갈 때 체력이 바닥이라 헥헥거리며 저 멀리 정상을 보노라면 언제 올라가냐라는 생각이 매번 들었고 올라가는 중에 등산로 한가운데 나무가 놓여있는데 거기서 붙들고 숨을 고르곤 했다.

헬리콥터 위에서 가끔 날씨가 변화한 것에 대해 오색찬란하거나 단풍이 들면 그것을 명산 위에서 찍어 방송으로 내보내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알록달록한 형광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 아주 작게. 손을 이리저리 흔들기도 하고 지팡이를 잡고 인사하기도 하는데 그 거대한 산, 특히 우리나라는 아주 딴딴한, 두 번 강조해야 한다. 더 딴딴한 화강암 기반의 암석산들이 많아서 절경을 이루기도 하고 커다란 바위에 둘러싸인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 다시 깨닫기도 한다.
주변 자연에 둘러싸인 수많은 나무들과 새의 울음소리를 듣노라면 자연과 일체 된 느낌이 들게 된다. 그리고 도시에서 빠져나와 그런 고요함이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안케하기도 한다. 등산을 중노년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도 닦는 도사들이 왜 산속에 가서 수련을 했는지 생각하노라면 납득이 간다. 또 암자나 절이 속세를 떠나 산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지 생각하노라면 도를 닦기 더더욱 좋은 장소는 역시 산이다.
가끔 여행을 자주 가는 우리 또래들이 산을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납득이 간다. 내려갈 거 드릅게 힘들게 올라가 봤자 정상은 별거 없어서, 또 저 드넓은 시야를 보고자 하면 구글어스로 실컷 보면 된다. 저기 38선 넘어서 윗나라도 구경할 수 있다. 그러나 산이 가져다주는 이점은 보이는 현상뿐만 아니라 성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기도 하고 육체의 힘든 점이 내면으로 향하게도 한다.

도 닦다. 자기를 정립하고 사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단련하는 것. 실제로 가부좌 틀고 폭포 맞아가며 앉아있는 그림 말고도 산을 올라가는 행위 자체에도 담겨있다.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 힘들지만 가끔 이정표를 보노라면 얼마나 남았는지 보고 다시 힘을 내며 나아간다. 한발 두 발 걷기 시작해서 매표소를 넘어 들어가기 시작하면 사서 고생이라는 말, 고난의 터널로 들어간다.
마치 우리 일상을 반영하듯 산은 표상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도중 언덕배기는 그렇게 힘들 수가 없는데 다시 쉼터에서 앉았다 가거나 식수터에서 잠시 목을 축이며 다시 나아간다. 정상을 위해 계속 우직히 올라가다 결국 꼭대기가 보이고 얼마 남지 않은 표지판에 더욱 힘을 내거나 젖 먹던 힘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마침내 산에 올라와 우리가 걷던 등산로 그리고 도중에 마주쳤던 미로 같은 숲만 보이다가 모든 것이 결국 드넓은 풍경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좁은 시야가 한순간에 탁 트이게 된다. 가장 높이 올라와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온 사람들은 저 밑에 끙끙 앓으며 올라오는 사람들을 자신도 여유 있게 헐떡(?) 거리며 내려보고 있다. 그런 쾌감 때문에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성취감과 무슨 산 몇백 미터 비석에 서서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기는 것 등 추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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