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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인문] 지옥은 그들의 것이다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팔백 구십 일번째

 

지옥의 지도(보티첼리, 1495)

단테의 신곡. 한번 쯤은 누구나 들어봄직 한 작품이며 동시에 아는 체 하기 바쁜 작품 중 하나임을 솔직하게 성찰하며 이야기 해본다. 지옥편을 읽어보면서 임팩트가 있던 점을 서술 해본다. 정석적인 지옥편의 해설과는 다를 수 있는 나만의 뇌피셜 독후감이 되겠다. 신곡을 읽진 않았어도 어느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옥문에 적힌 아래의 문구를 알 것이다.

 

 

 

"이곳에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는 지옥문을 통과하여 살아 생전의 선택에 대한 댓가를 치루고 있는 죄인들을 총 9개의 층을 통해 목격하게 된다. 여기 기독교에서 설왕설래가 오고가는 "림보"의 개념을 대중적으로 와닿게 했던 이가 단테다. 영화 인셉션에서도 중간에 낀 애매한 상태를 림보라고 하듯이 실제 림보라는 개념도 기독교의 신을 믿지 않거나 그에 대해 무지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혹은 사회에 기여했던 불신자들이 죽고난 후 기회를 주는 공간으로 정의한다.

 

그나마 림보는 9개의 공간 중 첫 공간이므로 지옥의 가장 얕은 층에 속하며 나머지 8개 층은 최악 중 최악의 공간으로 불교의 무간지옥과 비슷하게 자비없는 형벌들이 기다리고 있다. 흔히 생각하는 불타는 장면, 눈 뜨고 보기 힘든 잔인한 형벌의 장면들로 이루어졌다. 읽으면서 인상깊게 봤던 점은 배신자들이 어디에서 벌을 받고 있느냐인데 바로 가장 밑바닥인, 얼음 지옥 "코퀴투스"라는 곳이다.

 

 

얼어버린 호수의 영혼들이 있는 "코퀴투스"

이곳은 희대의 배신자들, 공동체와 국가와 이웃을 배신한 자들이 형벌을 받는 공간으로 혹한에 갇힌 영혼들이 되어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 만약 내가 지옥을 구상해본다면 어떠할 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니 나도 단테가 배치한 지옥에 십분 공감했다. 가장 악마와 유사한 자는 "배신한 사람"이다. 그 배신이라는 게 단순히 인간관계 혹은 공동체를 저버린 게 아니라 확장하여, 보편적인 혹은 암묵적으로 합의된 절대적 기준을 깨버린 행위라면 정확하다.

 

그리고 그 깊은 곳에서 타락천사이자 사탄이기도 한 루시퍼가 배신자들의 머리를 씹어먹고 있다. 유다와 브루투스같은 자들을.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유다는 예수를 은화 30개로 판 배신자이며, 영웅이자 멘토 그리고 은인이던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도 이탈리아 출신 단테에게 있어선 유다와 다를 바가 없는 배신의 아이콘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단테는 작품을 통해 기독교적 윤리관과 함께 사람사는 세상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해석 :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은 배신자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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