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육백 사십 구 번째

타지에서 한 번, 저녁 먹지도 못하고 바로 한 번.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에너지가 쏙 빠진다. 원래 본 모임 때는 아아를 선호하지만(마시면 기분이 조크든요~) 오늘은 키위바나나 주스를 급히 때려 넣어야 했다. 당이 떨어져서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생각을 듣는 것, 경청은 참 좋은 자세이지만 정말로 쉽지 않은 자세임에 틀림없다. 말을 하고 누군가 들어주면 힘을 얻지만 말을 안 하고 듣기만 하면 힘이 없어진다.

나도 투머치토커 할 줄 아는데.... 그래도 묵묵부답으로 일단 듣고 본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이를 쳐다보지 않고 딴짓을 해도 진행자인 나는 계속 눈을 맞춰가며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잠깐의 딴짓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보니 총 4시간을 1시간 텀을 두고 연달아 진행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지금 글을 쓰면서 곧 비빔면을 먹을 생각을 하며 버티고 있다.
경청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의 단순한 정의 말고 다른 숨겨진 의미는 없을까? 말은 통해도 동공에 넋이 없으면 사실상 내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혹은 약간의 시선처리라던가 손의 움직임등 비언어적 표현들이 경청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다. 경청은 상대의 말을 내 마음에 담는 행위, 내 이성과 감정의 영역으로 상대의 생각을 들여보냄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그 어떤 테크닉, 전문화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고학력자의 지식자랑보다 무학력자의 눈물 한 방울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처럼. 행위의 결과물로 공감이라는 열매가 맺어진다. 이 과정까지 생각보다 순탄하지는 않다.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부터 사전에 진행방식을 세팅하는 것까지 이야기를 주고받는 현장을 만드는 게 쉽다면 이렇게 기가 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청은 배울 수 있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 누구도 아닌 말하는 상대방이 된다. 들으면서 자라난다. 감정의 영역, 내면에서 느끼는 상대방의 말을 처리하는 것은 단순히 이론적으로 이뤄질 수는 없다. 만약 경청이 원활히 된다면 상대방도 그것을 느낄 것이고 눈동자에서 벌써부터 시그널이 보내져 온다. 우리는 목소리가 큰 사회에서 작은 목소리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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