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삼십 삼 번째

한 가지 신기한 점은 뇌는 자기 포지션을 유지하려 애쓴다는 점이다. 뭔 말이냐면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거나 폰을 보고 있으면 계속 추우우욱 거의 암반수 나올 때까지 지하로 가라앉는다. 그러다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잠이 잠을 부르고 핸드폰을 보노라면 눈이 피곤해져 다시 잠에 빠진다. 그런 상태로 지내다 보면 어느새 이젠 그것이 디폴트다. 예전에 나는 그나마 가족과 함께 여행이라도 다녔지만 50만에 육박하는 은둔 청년들의 통계는 얼마나 심각할지 상기시키게 된다.

다만 은둔청년을 다룬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고 그렇지만 내 체험을 비추어 보노라면 또 막상 씻고 어딘가를 다녀온다거나 책상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하다 보면 어느새 잠이 사라져 있다는 것이다. 늘어지면 늘어지는 대로, 깨어나면 깨어나는 대로 뇌가 변하고 적응하는 것을 보노라면 정말 양날의 검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우리가 아침에 흔히 깨기 싫고 알람을 여러 개 맞추고 다시 5분간만이라도 자고 싶은 것은 우리가 여전히 잠에 취해있다는 당연한 전제가 있어서다.
깨어나서 "아 상쾌해~"라며 CF모델처럼 결코 될 수 없는 것은 뇌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에 기초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깰 일이 생긴다면(출근이라던가, 약속이라던가) 기어코 일어나 욕실로 가기 마련인데 양치질할 때도 졸리지만 어느새 물을 끼얹으면 서서히 뇌가 맑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뇌가 잠잘 때의 포지션에서 이제는 활동하는 것으로 근육을 일깨우고 감각을 일깨워 가동하기 시작함을 알 수 있다.
손님과 묘한 언쟁을 하거나, 엑셀을 바라보며 지그시 마음속으로 욕을 할 때 우리는 잠잘 때 가라앉던 뇌의 상태는 진작 사라졌다. 이를 통해 보노라면 무기력과 우울증을 극복하는 심리치료에서 뭐라도 작은 것을 하게 하려는 행동활성화기법과 일맥상통하다는 것이다. 마음도 부담되고 에너지도 없는 판에 갑자기 영단어 열몇 개씩 외우라고 한다면 과연 바뀔까?

무기력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무것도 하기 싫기 때문에 그냥 누워있고 싶고 쉬고 싶다. 그래서 뇌는 그것에 맞추어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항상성을 발휘한다. 가라앉는 사람에게 우리가 흔히 해볼 만한 행동도 그건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사람들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지, 결코 쉬운 일들이 아닌 것이다. 마이너스 30인 사람에게 에너지 플러스 20짜리 일을 해보세요라고 할 수는 없다.
결국 해결방법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뇌를 이겨내기엔 알람 5개 맞춰놓아도 5개 다 꺼놓고 자는 것처럼 힘들기 때문에 아예 기대치를 리셋하듯이 내려놓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접근하는 데 있어 기존의 통념으로 공유할 만한 그 무엇은 평균이자 기준이 될 수 없다. 어디까지나 당신의 일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다. 억지로 해야만 하는 행동들에 눈이 멀어 나도 그만큼 집에 돌아와서 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스트레스만 가중될 수 있다.
우울해서 무작정 욕실 가서 머리에 샴푸부터 묻혔다는 누군가의 지혜로운 대처처럼 뇌가 다시 붙잡으려고 당신을 질질 끌어 결국 지하에서 못 벗어나게 하기 전에 재빨리 뇌를 다른 상태로 바뀌게끔 만들어야 한다. 헬스장 가는 게 귀찮은데 제일 힘든 부분이 가기까지인 것처럼 어느새 들어오면 다시 집으로 가기가 꺼림칙하듯이 각자만의 포인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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